厄介な隣人韓国への唯一の對處法は実利を与えない事である。
귀찮은 이웃 한국에 대한 유일의 대처법은 반일에 실리를 주지않는 것이다.
오선화
[일족]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대혈연집단
한국에는 뿌리깊은 자민족중심주의가 있다. 이것이 심해져 전정권(고 노무현 전대통령기 참여정부)은 국제적 고립마저 초래했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자기중심적 민족주의적 정서는 우리들의 눈을 근시안적으로 하고 정신을 폐쇄적으로 만들고있어 우리들은 좁고 막힌 굴에 있는 듯 시야가 닫혀있다.」 라는 주장이 겨우 사회의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한국은 민족성이 X같아서 답이 안나오는데 한국인들도 그걸 이제서야 느끼고있다. 라는 시작부터 X같다.
구미나 일본에서 나타나는 네셔널리즘(민족주의)는 혈연이나 지연 혹은 사회집단의 이해를 넘어서 사람들이 함께 국가의 독립, 통일, 발전을 추진하려하는 공동성으로부터 성립되어있다. 원래의 민족주의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요는 한국민족주의는 우월한 구미열강이나 우리 일본과는 다른 좆나 열등한 거라고 이야기하고있음.
한국의 민족의식의 핵은 개개의 혈연소집단의 「피의 일체성」을 그대로 국가규모로 확대한 「대혈연집단」을 민족(국민)으로하는 혈통주의이다. 이런 점으로는 북한도 다르지않다. 단지 북한은 외국인과의 결혼을 제한하고 있는 것 같이 「민족의 순혈」을 훼손해서는 않된다. 라는 혈통주의는 한국보다 한층 철저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구의 현대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국가도 아닌 그냥 큰 부락이라는 이야기인데 내가 이런 딸치고 버린 휴지보다 못한 걸 계속 번역하고 있어야하나 싶다.
이 근본이 되는 것이 「일족의 번영」을 절대적인 선=정의로 하는 전통적이며 배타적인 이데올로기다. 이 「일족」을 「민족」으로까지 연장해 나간 것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는 성립하고있다. 어찌하여 「일족의 번영」이 절대적인 선=정의로까지 되는 것일까.
하나는 부모나 일족의 선조에의 「효」를 최고의 적목으로 하는 이씨조선왕조시대를 거치며 자라난 유교전통이다. 이것은 공(국가/회사)에의 충의보다도 자기 부모나 선조에의 효행이 우선되었다. 이 「효」를 제일로 하는 모럴리즘(도덕주의)이「일족의 변영」을 절대적 선=정의로 하는 배타적인 이데올로기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무슨 개소리인고 하니 황국신민사관을 모르고 멸사봉공을 모르는 저열함은 바로 유교의 가족과 조상을 중시하는 효가 문제란다. 눈이 썩어들어간다.
두번째로는 전통적인 사회의 구성단위가 횡적연결을 정책적으로 끊는 형연소집단이나 여러 당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으로 닫혀진 개개의 소집단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각개 서로가 싸우는 곳에서 발생한 어너지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었던 것이 구시대의 한국, 즉 이씨조선왕조이다. 조선에는 일본과 같이 혈연관계를다르게 하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발전해 횡적연결을 더욱 연대해나가는 사회의 조건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파사움이니 부락간에 대립하기만 할 뿐 우리 대 일본제국과 같은 혈연이 아닌에 대의로 뭉친 적이없었다 라는데 뭐 할말이 없다. 충이니 의니 다 팽겨치고 자기가문만 위하던 전국시대의 일본은 어디 아틀란티스처럼 가라앉았거나 허구의 나라인 듯하다. 그리고 당파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당파 즉 정당끼리의 의견대립이 없는 나라도 있나? (아 있구나 북한.) 제놈들도 유신전에 쵸슈랑 사츠마가 서로 물고 뜯고 지랄병하고 메이지 유신 후에 정한파랑 자유민권파로 나뉘어서 서남전쟁 일으켜서 나라 말아먹을 뻔한거 기억안나나보지? 아 오선화는 귀화한 년이라 모르겠구나. 무식이 하늘을 찌른다. 아 그리고 중간중간에 말이 않돼는 부분이랑 반복되는 게 있는데 이년이 귀화한지 조낸 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를 조낸 못해서 그러니 이해하시라.
집단이기주의에 일관하는 한국민족주의
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안으로 닫힌 혈연소집단이나 여러 당파의 이익주의 말하자면 집단이기주의의 민족판이다. 자기중심적 이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만 처음부터 그러한 생각으로 근대국가건설을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다. 근대화를 이루어 근대국가를 건설하기위해서는 한국전통의 집단이기주의는 어떻게해서든지 극복해야할 중요한 과제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이러길래 난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한국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광수(아놔)는 3.1독립운동에서 한발 후퇴한 입장에서 「민족개조론」이라는 논고를 썼다. <민족독립을 이루고 근대국가를 담당해 나갈만한 힘이 아직 민족 자신에 갖추어지지 않았고 그런 연유로우리들은 민족개조를 이루어내지않으면 않된다.>라는 인시게 입각하여 쓰여진 것이다.
이광수는 거기서 「민족개조」 의 중요한 대상을 다섯가지정도 들고있으나 그 중 하나에 집단이기주의가 들어있다. 이광수는 이것을 「비 사회적 이기심」이라 하고, 「공공성/공익에의 무관심, 자기/가족/사사로운 무리에 대한 극단에 치달은 이기주의」라 단정하고 있다.
처음으로 집단이기주의문제점을 도려내고 그 극복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도덕적 정신수양을 주장하는 운동을 전개했지만 대중적인 지지을 얻지못하고 후에 활동을 금지당하는 것도 있고 해서 커다란 흐름을 낳는데 가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아 조선민족은 조낸 열등하니까 민족개조 좀 하자라 주장한 이광수는 후에 내선일체론을 들고 화려하게 친일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아놔 ......
종전후에 이승만을 대통령으로하여 독립을 이룬 한국정부는 정권수립이래 십수년에 걸쳐 이기족인 당파싸움에 날밤을 깠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한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이젠 아주 4.19 다 부정하고 군부독재 찬양시작하네 아놔 씨바.....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킨 이듬해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이었던 1962년에 「인간개조의 민족적과제」라 명명한 논고를 썼다. 여기서 박정희가 일관되게 주장한 한 것은 「이조500년역사에 그 근원이 있는 이기적인 당파주의」의 극복이었다.(지랄하신다. 반대의견 숙청이 목적이지.) 박정희는 그것을 근대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우려해야할 것으로서 「과도한 자기애, 민족애의 결핍」, 「특수/특권의식,공동의식의 저해」, 「사당이익을 주로하는 국가정책」의 세가지면으로 맹렬하게 비판했다.
친일정신 계승의 흐름을 아주 잘 예시해줘서 고맙다. 썅--;
박정희는 이러한 집단이기주의는 자유주의체제하에서 풍요로운 사회의 건설을 추진하면 사람들의 실제체험 안에서 저절로 극복되리라 생각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풍요로운 사회의 건설을 향하여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민족번영」의 전망이 열렸다. 그러나 그 에너지원이 되었던 것은 다름아닌 집단이기주의였다.(아 씨바 이젠 뭐 앞뒤도 안맞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 시대에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은 형태로 본격적인 성립을 보였다.
이미 구제불능, 한국인의 윤리는 어디에?
그리고 현재의 자유경쟁시장의 시대, 집단이기주의는 미증유의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미 각종 이익집단의 상반되는 주장은 국익이라는 공동레벨로 조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정부는 그때마다 자리모면이나하는 경제정책에 시종일관하고 있는 상태다.
재벌그룹이나 기업집단, 농민집단, 어민집단등에 이르기까지,각자의자기이익을 엉망진창으로 주장하고 양보하지않는다. 과격한 시위를 반복, 확장해나가는 일도 심심치않게 일어나 경제적인 불법행위나 부패가 무서운 기세로 만연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은 현재 사회의 윤리가 붕괴되어 거의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로 전락해버리고 있다.한국의 신문은 다움과 같이 표현하고있다. 「긴 세월간 우리를 지탱해왔던 예의, 우정, 존경, 효행, 충절과 같은 정신적 지주가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지않으면 한국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조선일보2002년1월3일)
일본극우와 한국의 극우는 역시 친구였다. ㅋㅋ 조선일보인용에서 난 웃음을 참을 수 없구나. 아 그건 그렇고 앞에서 효행 졸라 까지않았나??
반일감정은 민족결집을 위한 강심제
여기서 한국에 일어나지않으면 않돼는 「혁명적변화」란 무었인가? 처음에 말했던 서양이나 일본의 민족주의와 같이 「혈연과 지연, 그외의 사회집단의 이해를 넘어서 사람들이 함께 국가의 독립, 통일, 발전을 추진해 나아가자는 공동성」을 취득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내의 분열을 촉진했지만 「피의 일체성」을 달리하는 「이방인」에 대한 육친의식―---그 정서적인 일체감을 높이는 것으로 민족적인 결속의식을 유지해왔다. 여기서 유효성을 발휘하는 최고의 [이방인]이 일본이다. 그러니 국내에 대립이 격화되면 그때마다 독도문제나 야스쿠니문제를 들고나와 민족적인 결집을 만들어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반일이 고조되면 민족적인 결집이 동반되는 것이 아니다. 란 것이다. 반일이 고조되면 일본의 주장이 숙 들어가거나 사죄해온다는 실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이즈미 전 수상은 아무리 반일이 고조되어도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멈추지않았다. 한국정부는 이것에 큰 타격을 받아 심히 곤란해하고 있다. 외교적인 이익이 무엇하나 얻어지기는 커녕 한일이반을 일으켜 그것에 대해 정권비판이 크게 일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반일의 움직임에 대해 일체 실리를 주지않는 것 어디까든지 반일의 무효성을 일려가는 것. 일본이 이에 눈이 트인다면 정치적인 반일은 헛수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변화를 맞이할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이로부터다.
그니까 반일이 한국이 국내분열을 넘기기위해 사용하고있다는 건데 뭐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근데 이 국민적 정서자체를 아에 정치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일반화의 오류로 점철되어있다. 거기다 이걸 무시하는 것이 한국민족의 개조를 위한 계기가 될것이라 선심쓰고 있는데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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